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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차에 미친 남자들의 이야기, 「포드 vs 페라리」 .카테고리 없음 2020. 7. 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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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이 기다려지는 영화였다. 차를 좋아하도 보니, TV에 나오는 예고편 덕분에, 페라리라는 명성과 포드 GT40의 레이스를 구경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 기대는 만족시키기 충분했고 그 위에 자동차에 대한 불타는 열정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도 볼 수 있었다. 처음 포스터만 보고 나선 혼자서 상상하길, 크리스찬 베일은 페라리를 모는 드라이버이고, 맷 데이먼은 포드를 모는 드라이버로 나와서 과거 친구였던 두 사람이 서로 경쟁하면서 적과 친구 사이를 오갈 것이라는 스토리를 그려보았었다. 나의 상상은 완벽한 상상에 불과했다. 사실 페라리는 비중이 아주 작은 조연일 뿐이었다. 포드 GT40 이라는 역사적인 차가 탄생하기 위해 필요한 장치에 불과했다. 페라리는 '람보르기니' 또 다른 이태리 명품 스포츠카를 탄생시키기도 했지만, 포드의 GT40이라는 명작을 탄생시킨 주역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알게 되었다. 포드의 GT40이 모양만 멋진 빠른 차가 아니라는 것도. 물론 페라리는 현재의 스포츠카 중에서 최고로 꼽히고 있긴 하지만, 이 영화 안에서는 페라리는 초라한 조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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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미국 포드 사의 경영주였던 헨리 포드 2세는 어려워지고 있는 경영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레이싱을 뛰어들고자 경영이 어려운 페라리를 인수하려다가 오히려 인간적인 모욕을 당하게 된다. 포드 2세는 페라리가 주름잡고 있던 르망 24 경기에서 페라리의 콧대를 꺾을 차를 개발에 착수하게 되고, 그 일을 하게 되는 두 남자의 열정과 집념의 도전기가 르망 24 경기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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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 중 한 명인 캐롤 셸비(맷 데이먼)은 르망 24에서 우승 경험을 가진 유일한 미국인. 그러나, 건강 문제를 직접 운전을 할 수 없던 그는 또 다른 천재적인 레이서인 켄 마일스(크리스챤 베일)를 영입하여 페라리를 능가할 명차를 같이 개발한다. '셸비 코브라'라는 스포츠카는 알고 있었지만, 캐롤 셸비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이 영화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미국의 자동차 산업과 레이싱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 영화에서 낯익은 이름들을 만나는 것은 즐거웠다. 리 아이아코카가 포드의 중역으로 나오고, 맥라렌이 GT40의 드라이버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금의 자동차 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들의 이름을 듣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은 설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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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또 한 명의 주인공인 켄 마일스는 현재 아주 유명한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차에 대한 그의 열정만은 이 영화에 출연하는 어떤 인물보다 크고 강하고 불 같이 뜨겁다. 하지만, 그는 그 열정 만큼이나 고집만 세고 주변 사람들과 어울릴 줄 모르는, 돈벌이에는 젬병인 사람이었고, 돈이 되지 않는 레이스에서나 좋은 성적을 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의 곁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그를 존경하는 아들이 항상 같이 했다. 아내는 그의 열정과 성격을 품에 안아주며 그를 격려하기도 하고, 그와 다투기도 한다. 그래도 끝까지 그의 곁에는 가족들이 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그의 외골수적인 성격 때문에 포드의 중역들과 트러블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큰 회사의 경영진들을 자기들 밖에 모르는 아부쟁이들로 그리고 있다. 물론 그게 어느 정도 사실과 맞아떨어져서 그렇게 묘사가 되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엔초 페라리도 사업 파트너의 뒤통수를 치는 고집 센 변덕스런 독설가로 그려진다. 상대적으로 차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두 남자와 대비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표현한 면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포드 2세는 중간에 어렵고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큰 역할을 해주고, 엔초 페라리는 켄 마일스에게 존경심을 표하는 것으로 설정하여, 사업가들을 악역으로만 몰고 가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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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자동차 레이스에 미친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레이싱 영화이다 보니 르망 24 자동차 경주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너무나도 전형적인 레이스 드라이버들의 자존심 경쟁을 표현하는 장면은 좀 식상한 면이 있다. 나란히 달리면서 얼굴을 마주 보는 장면과 악셀을 밟는 발을 보여주는 시퀀스는 너무 많이 보아온 장면이다. 그래도 빠질 순 없는 일. 이런 약간의 아쉬움을 제외하면, 이 영화의 레이스 장면들은 숨이 턱턱 막히는 듯한 긴장감과 주먹 쥔 손에 힘을 주게 하는 스릴이 가득 차 있다. 스치듯이 가까이 달리는 자동차들 사이로 움직이는 화면에 빨려 들어가다 보면, 내가 직접 트랙을 달리고 있다는 환상에 빠져든다. 그 긴장감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이어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악셀을 밟고 있는 오른발에 힘을 빼느라 고생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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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와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 가슴과 머리에 남아있는 것은 켄 마일스의 얼굴이다. 사회에서 따돌림당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자신만의 것에 완전히 빠져들어 하나에만 집중하는 표정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아내와 아들의 사랑도 가슴에 남아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이 영화는 포드 FT40이라는 명차를 탄생시킨 두 남자의 열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두 남자 중 크리스챤 베일이 연기한 켄 마일스라는 인물이 가장 중심에 서 있는 주인공이다. 물론 영화의 시작과 끝은 멧 데이먼이 연기한 캐롤 셸비가 맡긴 했지만, 이 영화의 가장 중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 이는 켄 마일스이다. 그는 뭔가 하나에만 미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불타는 열정을 활활 피워올리는 집중력과 노력을 보여주었고, 그 노력의 결과로 얻어지는 성과에서는 느낄 수 있는, 불태운 사람들만이 얻을 수 있는 희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무엇에 미쳐있는지 뒤돌아보게 만들어 주었다. 과연 나는 지금 무엇에 미쳐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무엇인가에 미치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해주었다. 미쳐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의 소중함도 깨우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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