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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이웨이’ 성악가 김동규 “춤으로 만난 쇼호스트 유난희…여자사람친구” 남편 쌍둥이 프로필 나이 학력 과거 자살소동 ..
    카테고리 없음 2020. 6. 20.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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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호스트 유난희가 MBC 에브리원 예능프로그램 '비디오스타' 에 출연한다는 소식입니다. 이 방송에는 연 매출 4000억 쇼호스트 동지현도 함께 나온다고 하는데요 원조 쇼호스트 유난희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 오늘은 유난희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하는데요 유난희 쇼호스트 남편 아들 쌍둥이 나이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정보들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두근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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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쇼호스트 유난희 프로필 정보부터 살펴볼까요? ​유난희는 1965년생으로 올해 나이 55세 입니다. 고향은 강원도 화천군 출생이며 유난희의 학력사항은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석사 - 숙명여자대학교 가정학 학사 졸업입니다. ​유난희는 대한민국 최초의 쇼호스트이자 뉴미디어 케이블 TV 아나운서이자 최초의 화장품 전속모델입니다. 1991년 쇼호스트로 데뷔 하였고 억대 매출을 올리는 등 좋은 활약을 펼치며 이름을 알렸으며 방송활동과 수필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유난희(쇼호스트) 프로필- 숙명여자대학교 졸업- 케이블 텔레비전 최초 아나운서(1991)- 우리나라 최초의 홈쇼핑인 39쇼핑 공채1기 쇼호스트(1995)로 시작- 현재 현대홈쇼핑 프리랜서 쇼호스트- 현재 주요 진행프로그램 : ‘Club Noblesse with 유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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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난희의 과거를 살펴보면 지금과 똑같은 외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유난희는 어린 시절부터 아나운서가 되기를 꿈꿨다고 합니다. 어릴적 부터 마이크를 통해 듣는 자신의 목소리가 좋아 하루종일 마이크를 잡고 말하고 노래하면서 놀았다고 합니다. 유난희의 아버지는 직업 군인이셨고 유난희가 대학 나와 시집만 잘 가기를 바라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난희는 대학교 3학년때 방송국 아나운서 시험 이야기를 듣고 한국방송예술원에 들어가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유난희 남편은 강인남으로 직업은 의사라고 합니다. 유난희는 과거 쇼호스트가 되기 전에 먼저 결혼을 하였습니다. 유난희 나이 26살에 남편을 처음 만났으며 당시 유난희 남편 강인남은 인턴이였다고 합니다. 3년 동안 일했던 케이블 TV시범 사업단이 끝난 후 케이블 방송에서 일 하게 될 줄 알았으나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아 실망이 큰 상태에서 남편과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유난희와 강인남은 결혼 이후 아들 쌍둥이를 낳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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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난희는 결혼 후 우연히 신문에서 홈쇼핑 모집공고를 보게 되었고 당시 쇼호스트가 뭔지도 몰랐던 시기에 바로 지원서를 작성했고 실기시험에서 제품 설명을 훌륭히 하면서 1등으로 합격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방송을 하게 되었고 이때 부터 최고의 쇼호스트가 되었다고 합니다. 가끔 방송에서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유난희 쇼호스트인데요 앞으로도 좋은 모습으로 활동하기를 기대해보겠습니다. 이상으로 유난희 과거사진 남편 의사 아들 등 다양한 정보들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유익한 시간이 되셨기를 바라겠습니다. 이상 오늘의 정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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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규는 유난희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쇼호스트라는 직업을 각광 받게 한 1호 쇼호스트”라고 소개했다.​이어 유난희와의 인연에 대해 “춤으로 만났다. 사실 (춤이) 굉장히 건전하고 지상에서 해야 할 건데 지하에서 많이 발달됐다”고 말하며 웃어보였다.​유난희는 김동규에 대해 “제가 남자는 예전부터 바리톤을 좋아했다”며 “워낙 음색이 좋아서 (김동규의 음악을) 즐겨 들었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취미는 골프. 유난희는 “어느 날 전화가 왔는데 골프를 같이 치러 가자고 하더라”며 “나는 골프를 제대로 쳐본 적이 없는 초보였다”고 설명했다.​이어 유난희는 “그런데 가르쳐준다고 하기에 같이 라운딩을 갔는데 정말 승부욕이 어찌나 강하던지 나중엔 나한테 뭐라고 하더라”며 “끝나고 난 뒤엔 다신 같이 안 가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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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서 유난희는 “그런 승부욕 덕분에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했다”며 “저런 승부욕이 있어서 최고가 될 수 있구나 싶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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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엔 여느 때와 다른 부담이 있었다. 세 페이지나 뽑아 놓은 질문보다 더 신경쓰이는 것은 의상이었다. 아무리 뒤져보아도 명품이라곤 소품조차 찾아 볼 수 없는 내가 국내 최고의 명품 쇼호스트 유난희씨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으니까. 게다가 몇 년 전, 처음으로 TV 홈쇼핑을 보자마자 속옷세트를 홀랑 샀다가 사이즈도 안 맞고, 천연소재 아니면 피부트러블을 일으키는 덕분에 남 다 주었을 때부터, 같은 날 대량저가 판매술에 휘말린 내 탓에 남편이 몇 년째 같은 팬티 수십 장을 입다 지친 지금까지, 남들은 일반 TV보다 더 재미있다는 홈쇼핑에 눈길을 주지 않는 터였으니, 그런 나조차도 그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을 정도의 홈쇼핑 간판스타를 만난다는 일은 처음부터 이래저래 부담스러웠다.



    ​95년 케이블 방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두드러지게 발전한 TV 홈쇼핑 채널.​이미 홈쇼핑 업체들은 주요 백화점의 매출을 능가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이러한 TV 홈쇼핑 방송의 꽃이 바로 제품을 설명해 주고 구매를 이끌어내는 쇼호스트 또는 쇼핑호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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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명칭부터 따져보자. ‘쇼호스트’와 ‘쇼핑호스트’, 두 가지 명칭 중 어느 것이 맞을까? 결론적으로 ‘쇼핑호스트’란 용어는 우리나라 직업군에만 등재된 영어로 외국에선 알아들을 수 없는 명칭이다. (말 그대로 쇼핑의 주인이 판매자는 아니지 않은가?) ‘방송인과 유통인의 접합’이 유난희씨가 내린 ‘쇼호스트’의 정의이다. 쇼호스트는 대본 없이 2시간 이상 생방송을 진행하는 전문 방송인이자, 제품의 판매와 마케팅의 최일선에 서서 정해진 시간에 많은 매출을 올려야 한다는 점에서는 상품 마케팅(MD) 전문가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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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만약 방송을 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방송판 사정을 몰랐다면 마음 조금 상했을 수도 있을 만큼 통화도 만남도 쉽지 않았던 유난희씨.​그런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내 첫 궁금증은 싱겁게도 그 이름이 예명이 아닐까 였는데 의외로 아버지가 지어주신 본명이었다. 난초 난(蘭)에 계집 희(姬)라는 무난한 뜻보다는 ‘유난히’라는 부사로 들리는 이름, 유난희. 자신의 이름에 대해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분명 그녀의 실적은 이름의 어감대로 유난했다.


    39 홈쇼핑에 입사한 이후, LG 홈쇼핑을 거쳐, 우리 홈쇼핑에 ‘국내 최초 억대 연봉’으로 스카우트 된 후, 다시 현대 홈쇼핑으로 옮겨가면서 그녀를 따라 납품업체들이 옮겨 가 버릴 정도의 명품 홈쇼핑계의 실세, 품목과 가격 결정에도 MD(merchandiser) 못지 않은 안목을 갖춘 전문가 유난희씨.​직접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녀의 이력에는 공중파 아나운서 시험 22차례 낙방이라는 사실이 있는데, 그 사실이 내게는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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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너 리그에서 보낸 시절과 현재도 케이블 TV라는 마이너 매체에서 명품 소비자인 메이저 리그를 좌지우지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통쾌한가 말이다.​나의 시선을 계속 끈 유난히 길고 관절이 발달한 그녀의 손가락엔 이유가 있었다.10년 이상 피아노 전공을 준비하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과단성 있게 선회하여, 대학에서 가정경제와 영문학 복수 전공.


    케이블 TV(CATV)가 공식출범한 1995년 이전, 1991년부터 1994년까지 CATV 시험방송에서 아나운서로 활동.​그 후, 다솜방송에서 교육 프로그램 MC로 리포터로 내공을 쌓아갔던 시절을 지나 드디어 1995년, 방송하고 싶은 꿈을 꾸었지만 제대로 이루지 못 하던 서른 한 살, 채널이 생기며 지원한 곳이 홈쇼핑이었다. 드디어 그녀는 홈쇼핑 최초 쇼호스트가 되었다. 방송경력 15년이 지나 억대 연봉의 쇼호스트로 선망의 대상이 된 지금, 그녀에게 찬란한 현재 이전의 누구나 지나칠 수 없는 지난 날이 있었다는 사실을 후배들은 알고나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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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명품만을 소개하는 호스트는 아니었지만, 3, 4년 전부터 명품 전문 호스트가 되어 버린 유난희. 우리홈쇼핑에서 ‘유난희의 명품갤러리’라는 이름으로 처음 이름을 걸고 명품을 다뤘고, 현재 현대홈쇼핑에선 고가 명품 판매를 위해 그녀를 영입, ‘Club Noblesse with 유난희’를 방송하고 있다. 그녀가 진행하는 방송을 보았다. 허황되지도 흥분시키지도 않았다. 조사한 사실들을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다. 사실만큼 훌륭한 설득은 없다.


    소비자들은 그녀의 권고를 받아 구입한 물건들에 만족했기에 쇼호스트로서의 신뢰감이 형성되었을 터이고, 시청자들로부터 명품판매에 가장 적합하다는 평을 얻었다.​저서도 두 권이나 낸 명품 전문 쇼호스트 유난희가 말하는 명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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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 네임파워두 개의 백을 똑같은 소가죽으로 잘 만들어도 한 쪽에 ‘샤넬’을 붙이고 또 다른 한 쪽에는 붙이지 않는다면? 샤넬 쪽에 손이 가는 것이 바로 네임파워다. 고가라도 팔리는 최우선의 조건, 이름값이다.​둘째, 소장력구찌 티셔츠와 동대문 티셔츠를 비교해 보자. 명품은 소재와 박음질의 차이도 있지만 관리를 잘 하기 때문에 오래 간다. 물빨래하지 않고 드라이 크리닝하고 아껴 입으니 덜 손상되는 것이다. 왜? 소장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네임파워와 품질이 맞물려 있다는 얘기다. 딸에게 동대문 티셔츠를 물려줄 것인가? 명품 티셔츠를 물려줄 것인가? 받는 이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아닌가?​셋째, 품질많은 세월 소비자의 인정을 받기까지 신뢰가 쌓인 품질이니 좋지 않을 리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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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품 사는데도 단계가 있다고 한다.​뭔가 채워지지 않은 20대의 경우, 물질적으로 자기 과시를 하려고 백 등 보여지는 물품을 선호하지만, 3,40대, 명품을 충분히 쓸 정도의 여유있는 단계가 되면 오히려 보이지 않는 옷 등으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자기만족이라는 것이다.​예를 들어 20대 때, 동대문 티셔츠를 입고 구찌 백을 들었다면, 3,40대엔 동대문에서 산 2만 원 짜리 백을 들고 에르메스 옷을 입는다는 것이다.


    요즘은 10대에서도 명품 바람이 거센데 실상 그들의 명품이란 게 키플링 지갑 정도. 그저 브랜드 있는 걸 착용하고 과시하고 싶은 마음의 발현이다. 우리 어릴 때 역시 나이키를 신고, 죠다쉬를 입고 싶었던 것처럼.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브랜드 홍수라 다양할 뿐이다.​남의 방송만 봐도 90%는 물건을 읽어내는 유난희 본인은 상표를 보고 물건을 구입하는 단계는 이미 지났고, 상품 자체를 보고 구입한다는 한다. 똑같은 브랜드라도 이태리 제조보다 프랑스 제조 물품이 더 낫다고 하니 비싸다고 다 그만큼의 값어치를 하는 것을 아니라는 말이다. 오죽이나 비싼 명품, 알고 사야지 함부로 살 수 없지 않은가? 쇼호스트로서 힌트를 준다면, 옷, 가구, 보석, 화장품 등은 마진이 많이 남고 가전제품은 별로 남지 않는다고 한다. 똑같은 상품이라도 매장에 따라 가격이 다른 유통구조 때문이라고.​고로 명품은 무조건 홀대, 무조건 추앙할 것도 아니라는 것이 유난희씨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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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명품에는 사치소비문화조장, 물신풍조, 중독 등 반사회적 용어들이 꼬리를 문다.​유난희씨는 이렇게 말한다. 소비풍조 조장과 충동구매는 홈쇼핑뿐만이 아니라 백화점에서도 이루어지고, 오히려 홈쇼핑은 반품이 가능하기에 주문만으로 충동구매라고 할 수 없다고. 또 재미있는 사실은 백화점 쇼핑은 쇼핑백 버리고, 라벨 떼어내고 옷장에 걸어놓으면 남편이 모르지만, 시도 때도 없이 배달되는 택배는 음성적으로 쇼핑하는 사람에겐 불편한 것이 된다고.​중독성도 마찬가지. 매일 백화점 현장 조사를 나가는 유난희씨는 가는 곳마다 마주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것만 봐도 중독은 쇼핑 자체에 중독인 것이지 홈쇼핑만의 책임은 아니라고, 볼륨이 커서 가시화되기는 하지만, 성숙한 자아냐 아니냐는 개개인 차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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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는 케이블 가입자 자체가 가입비를 내는 중산층 이상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소비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케이블 가입대상이 난시청 지역이라는 점도 간과할 순 없지만, 국내 홈쇼핑 VIP고객 구매내역이 기천만 원대란 것만 봐도 국내 홈쇼핑 고객층은 중산층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백화점 무더기 판매대엔 만 원짜리 옷도 있지만 홈쇼핑에선 배송비 때문에 3종 세트로 묶어 몇 만 원대에 판매하고 있으니 싼 값에 사려고 홈쇼핑을 하는 것도 아니다. 싸기로 치자면 인터넷 쇼핑이 있다. 우리처럼 백만 원대의 홈쇼핑은 외국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IMF 때 백화점에서 눈총받기 싫은 부유층들이 홈쇼핑으로 물건을 샀고, 부도 직전의 업체들이 홈쇼핑 덕분에 많이 살아났다고 한다.


    간판급 쇼호스트 유난희씨는 우리나라 홈쇼핑의 미래가 외국 어느 나라의 홈쇼핑과도 다르게 화려한 프로그램과 즉흥적인 우리 국민성과도 연관이 있어서 앞으로도 긍정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또한 IT강국답게 모바일 등으로 매체는 다양하게 변화 발전할 것이라는 추측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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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땅의 여성으로 사회에서 일하면서 가장 큰 한계는 임신, 출산, 육아.​1996년, 만삭 한 달 전까지 방송을 일주일에 16, 17개 정도 소화해 내며, 주어진 대로 새벽 두세 시까지 방송하고, 또 서너 시에 출근하며, 임신 전과 달라진 것 없이 일해 냈다. 그러나 거기까진 장난이었다. 출산 이후의 중노동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게다가 그녀는 아들 쌍둥이를 낳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출산 두 달 후 다시 출근한 그녀. 출퇴근하는 아주머니를 두고 퇴근 후에 아이를 보며 일을 해 냈던, 힘들다고 얘기해도 이해해 줄 사람 아무도 없었기에, 버텨낼 수밖에 없던 독한 사람. 그 때 포기했다면 자신과 남을 원망했을 것이기에 지금 생각해도 그 때 선택을 잘 했다는, 몸이 셋이어도 감당키 힘들었을텐데 일하는 만큼은 행복했기에 그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다는 유난희씨는 일을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강남에 사는 엄마로서 무모하게도 1학년 때부터 책가방 안 싸주고, 학교에도 가 본 적 없이 살았단다. 어느 날 아이가 알아서 ‘불참’에 표시해 놓은 부모참여모임 신청서를 보았을 때나, 어쩌다 한 번 수영장에 데리러 가겠다고 하고 지연되는 스케줄 때문에 4시간 반을 늦어 갔더니 바닥에 쓰러져 자고 있는 아이를 보았을 때, 세상의 어떤 어머니의 마음이 찢어지지 않겠는가?​그러나 그녀는 슬퍼하지만은 않았다. 그렇다고 일을 줄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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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 밤 방송 끝나고 두세 시에 집에 가서도 다음 날, 새벽 6시에 충남으로 여행할 수 있는 어머니. 여행과 대화로 양육한 덕분에 지금은 착하고 순하고 성적도 우수한 아이들이 되었다는, ‘문제아 엄마는 다 직장 다니는 엄마’라고 손가락질하는 전업주부들이 들으면 열 받을 결과를 보고 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때는 요리까지 배워서 토요일엔 남편 친구들에게 만찬을 베풀고, 일요일엔 온 가족이 여행을 다녔다니 도대체 이 가냘픈 아줌마, 수퍼우먼이 따로 없다. 뭐 하나라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는 완벽주의자, 그래서 일도 성공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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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직장에서 연차제를 밟으면서 억대 연봉을 받기는 어렵다. 갑자기 탄생한 홈쇼핑 채널들이라는 기회를 타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고, 주위 인정을 받았으니 인복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사람. PD와 호스트가 잘 해도 물건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 홈쇼핑이라는 정곡을 파악하고 있기에 자신을 보고 따라와 준 업체에 고마움을 돌릴 줄 알고, 방송 현장에서도 여러 스태프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할 줄 아는 사람. 현재의 머천다이저와 진행자를 넘어서, 이젠 자신의 이름으로 소비자의 신뢰를 얻어낼 수 있도록 스스로 브랜드가 되고 싶은 사람. 일이나 가정 모든 역할에서 ‘닮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 유난희씨는 참 욕심 많은 사람이나 겸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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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기 전엔 그녀가 어떤 옷을 입고 나올 지가 궁금했었다. 그런데 후두염 치료직후임에도 성심껏 쏟아놓은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그녀가 얼마나 치열하게 몸부림치며 좋아하는 일을 지켜냈는가, 그리고 그녀도 나와 같은 아이 엄마고 여자고 고아를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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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내조명이 짙어질수록 앞에 앉은 그녀가 이보희에서 최진실과 닮았다고 느껴지더니, 어느덧 네 시간이 지나있었다. 재미있게도 한 회마다 꼭 한 시간씩 인터뷰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다음 회가 기대된다. 인터뷰 ● 최 경 아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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